획일화된 도시의 삶

조민석: 오늘 초점은 한강이지만, 서울에 대한 이야기부터 출발했으면 좋겠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처음 본 봉준호 감독의 영화는 <플란다스의 개>다. 한 가지 궁금하다. 관객수가 어떻게 되나?

봉준호: 완전히 망했다.(웃음) 전국 10만 명이었다. 보통 영화 개봉 전날 마지막 회차에 상영하는 전야제가 있다. <괴물>의 전야제 관객이 14만 5,000명이라는 자료가 왔는데 참 어이가 없었다. <플란다스의 개>의 전체 관객이 10만 명인데.


조민석: <플란다스의 개>에 나오는 아파트는 어디인가? 물론 아파트촌 자체가 비장소적이어서 그 자체가 중요하지는 않지만.

봉준호: 사실 세 군데 아파트를 조합한 것이다. 주인공인 이성재 씨가 사는 아파트가 산과 면해 있는데, 실내에서 숲이 보이는 아파트는 많지 않다. 성남 신흥주공아파트라는 오래된 아파트인데, 일반적인 아파트 단지와 약간 느낌이 다르다. 보통 구획을 지어서 담도 높이 세우는데, 구획 없이 숲과 아파트 단지가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고, 내가 다녀본 곳 중 조경이 가장 아름다웠다. 복도에서 추격전이 벌어지고, 옥상에 무말랭이가 널려 있던 아파트는 내가 결혼해서 3년 정도 살았던 송파구 문정동 문정시영아파트다. 지하실에 보일러가 있는 아파트는 결혼 전에 살던 부모님 댁, 방이동 대림아파트다.


조민석: 아파트라는 구조가 굉장히 단절된 공간이지 않나. 셀들의 집합이지만 이것이 모여서 전체, 또 다른 합으로써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지는 않는다. 고층화된 공간들도 마찬가지다. 선형으로 공간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고 단속적이다. 나는 힐버자이머의 선례를 종종 들곤 한다. 서구에서 이미 1920~30년대에 제안된 일종의 전형이다. 한국에서는 한강아파트나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등이 11층, 12층 규모로 유지되다가 어느 순간 더 높아졌다. 그러면서 장벽이 되고 탑상형이 나오는 등 아파트의 유형 자체는 많이 진화하는 중이다. 

봉준호: 프랑스에서 <괴물>을 개봉할 때 인터뷰 때문에 파리에 갔다가 그곳에서 폴란드 출신 건축가를 만났다. 폴란드 영화 중 키에슬로포스키 감독이 만든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이 있는데, 옆 동 아파트 여자를 훔쳐보다가 정말로 사랑하게 된다는 줄거리다. 거기 아파트 단지도 우리나라와 비슷해서 삭막하다. 그래서 물어봤더니 그 폴란드 건축가가 '그게 다가 아니다, 폴란드 어느 정권 때 바르샤바에 왕창 만들었던 것' 이라면서 막 신경질을 내더라. 흥분하지 말라고, 우리나라도 비슷하다고 말한 적 있다. (웃음)

조민석: 그것도 흥미로운 비교인데, 한국의 아파트들은 동부유럽의 사회주택과 이념 체제는 전혀 다르다. 사회주의 체제에서는 인민들에게 주택을 최대한 공급하기 위한 이상으로 만든 것이고, 그것이 바다를 건너 미국으로 갔다가 다시 한국으로 수입되면서 전형적인 자본주의 중산층의 아이콘이 된 것이다. 반세기에 걸쳐 일어난 엄청난 아이러니다. 물리적인 외형은 비슷한데 내용은 전혀 다르다. 처음 생겼을 때는 어떻게 지어야 커뮤니티나 노동자 계층에 가장 효율적일까에 대해 고민했다면, 거꾸로 지금 한국의 아파트는 서양에서 볼 때 이해할 수 없는 300만 달러 아파트란 말이다.

사진제공_ 청어람 필름


SPACE 2007년 2월호에 소개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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