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09년 8월 12일 오후 2시 
장소: 공간 사옥

박신의 (좌장, 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구영민 (인하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김윤환 (서울문화재단 창작공간추진단 단장)




박신의: 오늘 좌담은 『공간』이 갖는 특성을 고려해 관련된 키워드를 중심으로 진행하겠다. 즉, 유휴 산업시설물들의 예술적 활용과 도시계획 속에서 바라보는 새로운 예술 공간의 의미, 도시 재생과 이에 따른 정책적 쟁점, 그리고 아트팩토리에 대한 바람직한 한국형 운영 모델 정도를 염두에 두고 이야기해보자.

최근 다산쯔를 모델로 한 사례가 많은 것 같은데 사실 그 경우는 별로 좋은 모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마치 예술가들이 모여 창작촌을 이루면 저절로 관광이나 경제적 효과가 얻어지는 것 같은 논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관이나 상업 세력이 개입해 예술가들의 실질적인 의지와는 상관없이 상업화하는 일을 너무 쉽게 하고 있다. 이를테면 홍대나 동숭동을 문화지구로 설정해 지역을 특화한다고 하지만, 오히려 임대료가 올라 결국 예술가들이 쫓겨나는 경우가 그렇다. 다산쯔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예술가들이 부동산이나 투자의 미끼가 된 셈이며, 예술가들은 밀려나고 지역은 완전히 상업화됐다. 따라서 그런 모델을 쉽게 벤치마킹하는 것은 위험하다. 과연 서울시에서 추진하는 ‘아트팩토리’ 사업이 어떤 목표와 지향점을 갖는 것인지, 이렇게 행정 용어로 파급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 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구영민: 탈산업화 이후 도시 부근 공장들이 하나 둘 사라지면서 유휴지가 생겼다. 이로 인해 도시 언저리 부분이 모호해지는 새로운 경계 상황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최근 도시 재생 사업이 활성화되면서 이러한 경계부에 기존하던 산업용 건물들의 용도를 변형해 재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엄밀히 말해 수복(rehabilitation)의 개념이 짙은 예다. 예전 건물들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장소의 시간적 가치를 계속 유지하려는 거다. 중국의 다산쯔와 같은 예술단지가 팩토리라는 이름을 쓰는 것은 장소의 역사성을 계승하되 콘텐츠 자체가 대조적이라는 점을 적극 이용하는 전략적인 면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앤디 워홀이 예술의 상업성을 강조하면서 처음 ‘팩토리’라는 이름을 쓴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문화의 상업화를 추구하는 기업 마인드가 강하게 작용하는 것은 아마 피해갈 수 없는 입장일 것이다.

다산쯔도 다산쯔지만 베이징의 상당히 많은 지역이 그렇게 재생되고 있다. 이러한 지역들 중 굳이 공장과 예술의 관련성에 제한을 두지 않는 곳도 많다. 예를 들어 상하이 신천지는 서구 음식 등으로 장소 콘셉트를 잡고 고급 레스토랑이나 바, 카페들을 중심으로 지역을 발전시킨 경우다. 이곳은 장소가 가진 시간적 가치가 유별나다. 공산당이 처음 결성되었던 지역 건물들을 주제로 잡아 블록 전체를 중국식 도시 모델로 구성하고 있는데, 특히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몰리고 있다. 이 지역은 주변을 개발하기 위한 전략 지점으로 선택되었다고 볼 수 있다. 개발 이후 주변으로 부티끄 아파트와 고층 고급 상가 건물이 들어섰는데, 신천지 하나 때문에 그 가격이 다른 아파트에 비해 상당히 높게 책정되었다. 그래서 개발업자들은 도시개발 및 지역 가치 상승 측면에서 굉장히 좋은 모델이라고 얘기하기도 한다. 신천지 지역으로 인해 땅의 가치가 올라가고, 이를 중심으로 새로운 모델의 도시 커뮤니티가 형성되면서 상하이의 명물이 된 사례다.

다대포 경우, 이와 비슷한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자본주의 측면에서 준공업 지역 주변으로 롯데 캐슬 아파트가 들어서고 이로 인한 용도 변경이 이루어져 지가가 크게 상승한다면, 지주로서는 앉은 자리에서 많은 돈을 벌게 될 뿐만 아니라 장소 자체를 특화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맞게 된다. 그것이 예술의 상업화를 유도한다고 해서 좋다, 나쁘다 판단하기에 앞서 이 프로그램이 다대포의 지역 가치를 상승시키고, 다대포 해수욕장과 함께 고급문화의 중심이 된다면 우선 객관적인 성과는 있다고 본다. 특히 다대포 해수욕장 관광객들을 통해 이러한 문화 콘텐츠가 더욱 빛을 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트팩토리 인 다대포’는 쓰레기를 분리하고 재생하던 건물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오염 산업이 예술로 승화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예술이 된다. 더욱이 바다와 함께 좋은 전망을 가지고 있어 개발되는 주변과 같은 콘텍스트 안에서 바라본다면 더없이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지주 역시 처음에 이러한 생각을 했지 않았나 싶다.

박신의: 사실 영등포구는 그동안 문화정책 등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작가들이 낮은 임대료에 힘입어 문래동으로 모여 작업을 하자 어느 순간 그곳이 하나의 정책 아이템이 되어버린 것이다. 결국 서울시가 문래 사거리에 공장 하나를 사서 그곳에 창작 스튜디오를 건립함으로써 시설 투자를 한 셈이 되었는데, 정작 그곳에서 작업하던 예술가들에게는 황당한 일일 수 있다. 물론 영등포구나 서울시로서는 그곳이 활성화되면 좋겠지만, 실제로는 부동산 가치와 직접적인 연관성을 배제하기 힘들다는 모순이 발생한다. 그런 점에서 예술을 통해 도시를 재생한다는 명분은 처음부터 거리가 먼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차라리 관에서 섣불리 개입하지 않고, 예술가들이 도시를 재생할 수 있도록 여건만 마련해주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구영민: 예술적 가치로 본다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모든 아트팩토리에 대한 정부의 간섭을 묵과할 수 없을 것 같다. 다산쯔도 현재 1세대 입주자들은 거의 다 지역을 떠났다. 큰 이유 중 하나는 그곳이 예술이라는 한 가지 콘텐츠만 소화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거기다 과거 군수공장 지역 전체를 슈퍼 문화 블록으로 책정한 것도 이 지역을 문화 투기 지역으로 만든 이유라고 본다.

이와 견줄 만한 예로 중국 상하이에 있는 타이캉로(路)를 들 수 있다. 그곳은 한 블록만 개조해 주로 보석이나 패션, 공예와 같은 응용미술 분야의 소규모 작업실과 가게들을 운영하는 예술가들에게 임대 공간을 제공했는데, 의외로 많은 방문객이 이 지역을 찾고 있어 지역의 명물이 됐다. 특히 오늘날은 외국 방문객들에게 더 많이 알려져 이 지역 주변을 대규모 주거와 상업 단지로 개발하려던 시정부가 개발의 경계를 한정하고 블록을 매우 크게 넓혀, 타이캉로를 지역 문화 개선 지역으로 설정할 정도에 이르렀다. 지금은 마치 유럽의 한 도시 구획처럼 골목골목에 토산품 가게와 레스토랑들이 즐비하다. 오히려 정부의 간섭이 집중되는 바람에 부자연스럽게 확장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이러한 발전은 근방의 신천지와는 대조적인 경우다. 다만 예술인의 거리지만 그나마 타이캉로라는 상하이의 오래된 주거지역이 함께 명맥을 유지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위층에 예전 거주자들이 아직 살고 있기 때문이다. 단정하게 정리된 골목 사이로 주거가 공존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타이캉로의 가치는 이미지 효과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김윤환: 다대포의 경우 개인이나 기업의 영리 추구가 비판의 대상이 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다. 다만 아트팩토리라는 정책적인 차원에서 보면, 공적 사회적 기능과 사적 이익이 적절히 조절되는 것이 중요하다. 다대포의 경우 영리 목적으로 경도될 우려에 대한 지점이 항상 상존하고 있다. 한편 지자체나 정부기관의 공간일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공적 기능이 강조된다. 그러다 보니 예술가들의 활동의 자율성, 예술의 힘으로 생태계처럼 점차적으로 지역이 활성화되는 부분이 중요할 텐데, 이에 대해 정책적으로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행정이 미처 그것을 뒷받침하지 못하는 측면들이 존재하는 것 같다. 그런 우려가 현재 문래예술공단을 보는 많은 사람의 조심스러운 시각으로 나타나는 것 같다.

구영민: 맞는 말이다. 앞서 말씀드린 타이캉로라는 블록에서 한 골목이 성공을 거두니까 상하이 시정부에서 그동안 추진해오던 전반적인 개발 방향을 수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전면적 재개발은 거기까지라는 의미로 타이캉로 지역 앞에 벽을 쌓았다. 그런데 원래 타이캉로 재생 계획은 몇 명의 건축가와 예술가들의 제안으로 시작되었다는 점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정책적 재개발보다는 그러한 풀뿌리 제안이 성공적인 경우가 많다 보니 시정부나 지자체 등에서 가세한답시고 전체 블록을 다루는 바람에 오히려 역효과가 나는 것이다. 옆 블록으로 번진 타이캉로 재생은 현재 할리우드식 효과로 전시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정부의 개입 정도를 어디에서 멈추는 것이 현명한가를 말하자면, 이것을 예쁘게만 만든다거나 다듬는다거나 하지 않고 예전부터 갖고 있는 상하이 전통 주택가의 골목길 아우라를 그대로 유지하게 하고, 거리와 면한 하부층만 아트와 연관되는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재활성화 하도록 행정적, 경제적  지원을 하는 것이다. 지금도 이 거리가 실제라는 사실을 알게 해주는 것은 거리의 예술과 함께 위층에서는 빨래를 말리고 있는 일상의 모습이다. 다시 말하면 커뮤니티가 진정으로 융합되지 않으면 성공적인 재생을 이루기 힘들고, 시간을 가지고 균형 있게 조절하지 않으면 처음부터 기업형, 정책형으로  시작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박신의: 아트팩토리의 성공이라고 이야기했는데, 그것이 한국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한번 점검해봐야 할 것 같다. 어떤 의미의 성공을 말하는 건가?

구영민: 도시 재생 입장에서 보면, 정부에서 하는 도시 재생 사업 대부분이 물리적인 재생이지 가치 재생에 대해서는 거의 다루지 않는 것 같다. 가치 재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커뮤니티를 진정으로 활성화시키는 소프트웨어다. 개인적으로 인천 중구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모든 일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 요즘 벌어지는 많은 복원사업이나 재생사업은 흔히 말하는 ‘제로시티’를 위한 조건 중 하나다. 제로시티란 정부가 제시하는 비전과 경제적 이윤 창출에 
‘역사와 문화’의 가치가 장식적으로 덧붙여진다는 미래 도시에 대한 풍자적 표현이다. 다시 말하면 이 공식에서 ‘역사와 문화’는 소위 할리우드 효과를 노린 것이라는 거다. 근대 건축가들이 이상향의 꿈으로 향했던 것처럼, 오늘날 벌어지는 역사 복원과 재생은 ‘역사와 문화’라는 이름으로 기존의 모든 실생활, 일상을 없애도 된다는 위험한 발상을 동반하기도 한다.

가치 재생, 특히 목적적 가치 재생의 실례를 든다면, 옛날 뉴욕 브루클린에서 수변 공간 쪽 빈 창고 건물이나 공장 건물들을 아티스트들의 작업실로 무료 제공한 적이 있다. 당시는 시정부의 경제적 여건이나 시간상 갑자기 수변 공간을 다루기 힘든 상황이었고, 부동산 정책상 미래의 개발을 위한 지역성 창출(가치 창출)에서 ‘아트팩토리’는 굉장히 좋은 발상이었다. 물론 지금 이 지역은 뉴욕시에서 경제적으로 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상당히 가치 있는 지역으로 발돋움했다. 예술이 경제적 가치로 환원되는 경우 부정적인 예도 있지만 도시 문화적 측면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아예 처음부터 대놓고 솔직하게 시작한 것이면 몰라도 문래동도 이렇게 될 경우 예술 자체의 실질적인 재생과 가치 재생의 의미가 보존되기는 힘들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좋은 취지로 시작했다가도 결국 예술이 자본화되는 현상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문제다. 아트팩토리가 성공적으로 도시에 착륙하기 위해서는 프로그램 자체가 지역 커뮤니티와 동화될 수 있어야 한다. 
‘아트’ 자체의 활성화도 좋지만, 그것이 경계 구역의 특성을 살려 어떻게 매체로 작용하는가에 있다고 본다.

김윤환: 정책상으로는 세 가지 정도가 목적이 될 것 같다. 예술가들이 도시에 창조성을 불어넣을 수 있는 촉매 역할을 하니 그들에게 슬럼화된 빈 공간을 제공해 모자라는 창작실을 지원하는 동시에 도시 재생 및 지역 활성화를 꾀하고, 나아가서는 산업적인 부분까지 연결하려는 목표가 그것이다. 중요한 점은 이 세 가지 정책 과제가 어떤 식으로 실현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인데, 대상지마다 그에 맞는 방식이 필요할 것이다.

예를 들어 문래동의 경우 정부가 창작 공간을 제공한 것이 아니라 예술가들이 그냥 세입자로 들어간 것이다. 그들이 모여 재미있게 창작하고 커뮤니티를 활성화하면서 점차 예술 축제 형태로 규모가 커지자 그런 것에 주목해 정부와 시에서 접근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경우 창작 공간을 지원한다는 측면에서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 지역이다. 또 도시 재생이나 문화산업적인 역할 부분도 그들 스스로 선택해나갈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가질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문래동 같은 자생적인 창작촌 내부에서는 많은 변화가 일어나는데, 특히 예술가의 정체성에서 변화가 일어난다. 이들은 도심 속 창작촌 안팎에서 벌어지는 많은 사회 현상과 접하는 과정에서 서서히 전통적인 예술가상에서 벗어나게 되고, 예술 활동과 작품에도 변화를 겪게 된다. 예를 들어 공공벽화를 한 번도 그려보지 않은 작가가 문래동에서는 공공벽화 운동에 나서는 현상 같은 것이다. 도시 재생이나 지역 산업 발전과 접목되어야 하는 부분들은 거시적인 측면에서 보면 예술가들도 원하는 바라고 생각한다. 정부는 정부대로 다양한 스킬을 가지고 접근해야 하는데 그것에 대해 잘 모르는 측면이 아직 많은 것 같다.

박신의: 앞서 ‘아트팩토리’라는 명칭이 과연 적합한가라는 문제를 제기했지만, 나는 이것이 한국적 상황에서 왜곡됐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예술가들이 자발적으로 공간을 형성하고 창의적으로 공간을 재배치, 재설계하면서 예술을 어떻게 새롭게 할지에 대한 담론을 거쳐야 하는데, 이런 과정 없이 행정적 요구로 단기에 이룰 수 있는 사업 성과 혹은 ‘시설’의 명칭으로 이해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리고 도시 재생이니 지역사회에 대한 예술적 결합이니 하는 가치들이 ‘공식’처럼 손쉽게 적용되는 듯하다.

하지만 유럽의 경우를 보면 정부의 개입은 최소화되어 있고, 개입이나 지원 형태도 간접적이다. 오히려 쟁점으로 활발하게 드러나는 것은 예술가들의 자발성이고, 그들이 도시와 지역사회, 문화 변동 등을 매개로 새로운 예술을 만들어가는 데 있다. 건축가 입장에서 봐도 그렇다. 산업화의 역사에서 버려진 산업시설물들을 예술 공간으로 만든다는 의미가 매우 흥미롭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는 극장이나 콘서트홀, 박물관이나 미술관 등을 예술 공간의 주요 건축물로 보지만, 사실 이러한 생각은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니다. 그러한 건축물은 예술 장르 간의 구분을 명확히 하고, 또 창작물의 결과만 프레젠테이션하는 곳이어서 관객과의 접촉이 제한적이다. 게다가 찾아오는 관객만이 예술품을 향유하니 예술의 사회적 효과라는 것도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도심 속의 버려진 공간을 예술 공간으로 리모델링 혹은 리노베이션한다는 것, 혹은 그 자체로 활용한다는 것은 모더니즘 시기의 예술 공간 건축 기능과 의미를 전혀 다른 차원으로 만들 수 있는 잠재력을 갖는다. 그것은 장르 융합 실험과 창작과 제작, 향유, 배급, 투자 등의 선순환적인 구조를 갖는 것이어서 ‘과정’으로서의 예술을 담아내는 것이고, 이에 따라 건축적 실험도 동시에 이루어진다.

지역사회와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일례로 프랑스의 사회학자 파브리스 라핀(Fabrice Raffin)은 유럽의 3개 도시 속에 존재하는 아트팩토리가 어떻게 지역사회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조사한 결과를 저서로 출간한 바 있다. 그는 특히 지역 주민의 행동 변화에 주목하는데, 주민들이 예술을 접하고 예술가들과 생활을 같이하는 체험을 통해 정치의식이 향상된다는 것이다. 그들은 아트팩토리를 신자유주의적 시대가 강요하는 가치에 저항하는 일종의 저항의식으로 받아들이고 있고, 내 생각엔 도시 재생이나 커뮤니티 회복의 근거가 바로 여기에서 주어진다고 본다.

김윤환: 아트팩토리는 기존 창작 공간이 가진 경향들 중에서 단점이 될 만한 부분을 해결해나가는 방향성을 가졌으면 좋겠다. 예컨대 폐교 활용 창작 공간, 국립, 사립 레지던시, 그리고 개인이나 그룹의 창작 공간 등 다양한 창작실 유형이 있는데 세 가지 유형 모두 장단점이 있다.

박신의: 그런데 아트팩토리를 미술에 한정해서 논의하는 듯하다. 아트팩토리라는 공간 자체가 예술에 대해 새로운 접근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탈장르적 성격과 그 자체로 예술과 사회적 관계를 통합적으로 이루려는 부분을 주목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우리의 아트팩토리는 현실에서 부족한 창작 공간 지원 정도로 한정해서 작가를 공모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는 지극히 한국적인 맥락에 준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개인 창작에 충실한 예술을 대상으로 하고 있을 뿐 ‘어떤 예술인가’에 대한 고민은 거의 하지 않고 있다.

김윤환: 금천예술공장의 경우 기존의 시각공연  예술 장르 외에 이론 비평, 도시와 자연, 글로컬 같은 실험적인 분야도 참여하는 공간으로 설정했다. 아트팩토리는 새로운 예술 실험이 가능한 공간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다른 분야 전문가들도 결합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했다. 가능하면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을 수용하고 싶은데 아직은 미흡한 부분이 많다. 도시 이야기나 공공예술, 커뮤니티 아트, 비평 이론 분야 신청자가 현저하게 적다. 또 한편으로는 공연예술 쪽이 시각예술 쪽에 비해 매우 적게 신청했는데, 이러한 현상은 그동안 우리나라 레지던시가 시각예술에 편중되었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앞서 말한 아트팩토리의 방향성에 덧붙이자면 기존 창작 공간 유형 중 개인 운영 창작실의 경우 자기가 원하는 대로 작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운 예술가에게는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한다. 그런 면에서 예술가의 창작 환경 개선 차원에서 정부나 시의 지원이 필요한 부분도 있는 것 같다. 또 하나는 10년 남짓한 역사를 지닌 레지던시의 경우 3개월이나 1년 정도로 제공 기간이 짧기 때문에 안정적인 창작 공간 제공에는 한계가 있다. 반면 신진 예술가 발굴과 국내외 교류 등 네트워크에서는 장점이 발휘된 것 같다. 또 폐교 활용 창작촌은 지역으로 들어간 경우인데, 아무래도 폐교 공간은 지역, 문화, 경제적으로 굉장히 외진 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접근성이 떨어져 예술가의 경제 활동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장점이라면 지역에 토착해 지역이 필요로 하는 문화 예술 교육 공간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는 것이다.

기왕에 이런 새로운 창작 공간 형태로 아트팩토리라는 담론을 이야기하고자 한다면, 기존 창작 공간들의 장단점을 잘 참고해 아트팩토리 정책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구영민: 아트팩토리 운동에서 ‘아트’ 자체는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본다. 건축가 입장에서 볼 때 제일 중요한 문제는, 도시가 무계획적으로 발전하다 보니 원치 않게 생겨나는 경계 부분들이 상당히 많아졌다는 것, 그리고 원치 않은 경계 부분들은 계획적인 처리가 어려운 지역이라는 점이다. 자치단체나 정부가 재생이라는 이름을 걸고 이러한 지역에서 하는 일은 낡은 아파트를 획일적으로 다시 짓는다거나, 달동네를 모두 부수고 규격화하는 정도의 사업이다. 아트팩토리를 근본적으로 재생 사업으로 포함시키려는 의도는 아트 자체의 중요성보다는 특징 있는 공동체들과 기존 이웃을 어떻게 만나게 하는가에 있다고 본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대한민국이 산업화를 거치면서 무계획적으로 세워놓은 공장지대가 현재 주거지랑 같이 섞여 있기도 하고, 지역 연계를 차단하는 빈 공간으로 남아 있기도 한 점이다. 경계 상황의 위기가 온 것이다.

문래동도 같은 맥락에 있다. 처음 그 공간에 예술인들이 모여들기 시작한 것도 작업실이 없는 예술가들이 싼 가격에 임대해서 조용히 자기만의 작업을 하려다 같은 뜻을 가진 친구들이 모이기 시작해 지금에 이르렀다고 본다. 앞서도 얘기했듯이, 나는 이러한 빈 공간들을 꼭 예술가들이 점유해야 한다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다만 기왕 예술가들에게 점유된 지역이니 유럽 등지에서처럼 새로운 예술의 발상지 역할을 한다면 금상첨화일 거라는 생각이다. 사실 공장지대와 같은 공간들은 깊은 역사적 가치를 갖고 있지는 않다. 다만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변하면서 시간적 가치를 가지게 되고, 의도하지 않았던 장소적 가치를 가지게 된 것이다. 따라서 도시계획 측면에서 이러한 지역들을 통합해 특정 구역에 편입시키거나 하는 것보다는 독립적으로 가치를 재생산할 수 있는 매개 공간 역할을 하게 해주는 것이 올바른 일 같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베이징의 다산쯔처럼 슈퍼 블록형으로 개발할 거대한 지역도 없고, 그렇게 하더라도 운영되기가 상당히 힘들다. 우리나라에도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처럼 역사적 가치가 있어 이를 기리기 위해 만든 수복형 건축물이 꽤 있는 편이다. 서울시립미술관의 경우가 그렇다. 철도 역사를 전시장 및 미술관으로 만든 것도 있고, 발전소를 개량해 백화점으로 만드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이들의 
‘위치’다. 적절한 위치에서 적합한 건축물이나 지역이 가치화됨으로써 분절됐던 경계상황이 새롭고 개성 있는 커뮤니티로 거듭나는 것이 아트팩토리 담론의 의지 아니었을까. 다만 아트는 그중 한 아이템이었을 뿐이다.

인천 아트팩토리 운동의 하나인 아트 플랫폼의 문제는 굉장히 사치스럽고 호화스럽게 보인다는 것이다. 햇빛 아래 찬란하게 빛나는 유리와 하얀 포장 바닥, 주변과 동떨어진 텅 빈 공간. 원래 취지는 도심에서 사람들이 빠져나가니까 사람들을 다시 모이게 하려는 공간 정책이었는데, 결과적으로는 또 다른 기능의 소유물이 되어버려 스스로 소외된 장소가 되었다. 마음먹고 찾아가 정해진 시간을 보내야 하는 곳, 예술가의 입장에서는 선택되어야 전시할 수 있는 갤러리 공간으로 비쳐지는 곳, 이것이 아트팩토리 담론의 취지는 아니었다. 오히려 예술 자체가 일상 속에 녹아들어 이웃들이 언제 어디서나 예술을 발견하고 접할 수 있는 곳을 형성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러한 지적에 대해서는 헤이리 아트 밸리나 파주 출판문화정보 산업단지도 자유로울 수 없을 것 같다. 예술 관련 집단들이 한꺼번에 모여 조성한 특권적인 주거단지나 도시로부터 떨어져나간 출판사 조합단지를 문화의 의미로 승화시킨다는 것 자체에 문제가 있다. 반면 주거지역에서 가정집 등을 개조해 공간을 조성하고 독자들과 함께 호흡하려는 뜻 있는 출판사도 꽤 있다고 들었다. 특히 어린이용 도서를 만드는 사람들은 애들하고 놀 수 있는 놀이터를 만들어놓고 부모들을 초대하는 등 스스로를 개조하는 동시에 섞여 들어갈 수 있는 커뮤니티를 조성한다는 것이다. 아트팩토리의 근본 취지는 여기에 가깝다고 본다. 그렇지 않다면 그럴듯한 박물관이나 미술관 하나 새로 짓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는 얘기다. 예술은 일상을 새롭게 보는 눈을 제공하는 일이다. 그런 면에서 주위 거주자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가는가가 중요하다. 화가이건 보석 디자이너이건 공연하는 사람들이건, 어디에서든 기존 커뮤니티의 일원으로 살아가도록 해주는 것, 즉 우리나라에서는 규모나 질적인 면에서 풀뿌리 접근이 훨씬 더 효과적인 전략이라고 본다.

박신의: 유휴 산업시설물을 활용하는 데는 크게 두 가지 접근 방법이 있다고 본다. 하나는 오르세 미술관이나 테이트모던처럼 유산 가치가 큰 것을 정부 차원에서 리노베이션하면서 국가 브랜드로 기능하게 하는 방법으로 오늘 논의의 대상이 아니다. 또 하나는 소위 우리가 말하는 아트팩토리처럼 유산 가치가 덜한 곳에 예술가들이 자발적으로 들어가 창작 공간을 형성하게 하는 것이다. 나는 이 두 가지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처음부터 지자체가 개입하는 방식으로 창작 공간 조성을 진행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시설은 공적 자금을 투자한 곳이기 때문에 본질상 관리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예술 실험과 지역사회와의 새로운 관계 형성 등에 담론을 만들고 그 결과를 기다리는 실험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도 서울시는 시설을 짓자마자 작가를 공모하고 있는데, 그 자체가 얼마나 제도적인 논리인가. 과연 그런 상황에서 아트팩토리의 공식대로 금방 지역의 브랜드로 부각되고, 또 예술시장이 집결될 수 있을지, 공연단체를 위해 제작 지원을 할 투자자가 나타날지 의문이 든다. 우리는 늘 새로운 사업을 두고 최선책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차선책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을 반복하고 있다. 고작 왜곡된 형태의 아트팩토리를 놓고 그나마 효율적인 운영이 무엇일까를 논의하는 수준이어서 정말 안타깝다.

구영민: 글로벌리즘의 결과로 나타난 두드러지는 현상은 지자체 간, 도시 간 경쟁이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는 거다. 요즘은 구(區) 간의 경쟁도 상당히 심해졌다. 요즘 정치인이나 행정가들이 가장 먼저 내세우는 것이 지역의 정체성(로컬 아이덴티티), 지역 색이다. 우리 동네엔 ‘이게 있다’라는 자체가 굉장히 중요하고, ‘있다’는 것을 너머 상당히 활성화되고 있음을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


딱히 알려진 것이 없는 영등포구의 경우, 문래동과 같은 자생적 커뮤니티가 아주 좋은 홍보 수단이 될 수 있다. 만일 문래동이 지역의 정체성을 개조해나가기 시작한다면, 그 주변 역시 이러한 정체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도시 프로그램을 창출하기 시작할 것이다. 물론 아이덴티티만 있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아이덴티티가 가치를 발생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이 문래 아트팩토리가 한국적 아방가르드 예술의 기지가 된다거나, 공식, 비공식  주변 커뮤니티와 접촉해 대가를 배출시킨다거나 하는 실질적이고 자발적인 이벤트를 만들어가는 동안 주변 성격도 변화되면서 다양한 문화 행위를 포함하게 된다는 것이다.

지하철역 벽에나 그리던 그라피티(graffiti)가 어느 날 갑자기 파크 애브뉴의 비싼 아파트 로비 벽에 걸리기 시작했고, 그 범죄적 예술가는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굉장히 이율배반적인 얘기다. 거리 예술을 추구하던 저항 예술가가 자본주의 예술론으로 인해 갑자기 레벨이 달라진 거다. 그렇다고 이 예술가를 부정하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 오히려 일상의 무의미함을 새로운 것으로 보게 한 예술정신이 타당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예술인들과 행정가들, 건축 도시 전문가들도 이러한 관점에서 시대정신을 공유하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상생하지 않으면 아무도 살아남지 못한다. 그래서 현 문래예술공단 주변으로 아파트 단지가 생기더라도 주변에 예술인들이 모이는 카페나 레스토랑, 서점 및 구립 도서관, 소규모 갤러리 등이 들어선다면, 예술이 가진 문화적 사명을 다하는 것이라고 본다. 차제에 구청이 다양한 프로그램을 정리해서 이에 걸맞은 개발을 유도하고, 동네를 개조하거나 변화시킬 수 있는 거점을 마련하게 된다면, 문래  ‘아트팩토리’ 운동의 의미가 충분히 살아난다는 것이다.

박신의: 하지만 창작 공간 예술가들이 하루아침에 지역사회와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폐교를 창작 공간으로 활용한 작가들이 그곳 주민들과 사이좋게 지내기까지는 최소한 3년 이상 걸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문래동에서도 거리 공연을 했지만 일부 주민들의 거부반응이 엄연히 존재했으며, 또 벽화를 그리지 말라는 글귀를 벽에 적어놓은 주민도 있었다. 문래동 철제 공장 주변 노동자와 주민들이 갖는 예술에 대한 접근과 이해가 저절로, 단번에 되는 것이 아니라는 중요한 사례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행정 논리에서는 공적 자금을 투자했으니 당연히 예술가들이 지역사회와 좋은 관계에서 일종의 ‘예술 서비스’ 내지 ‘봉사’를 하라는 주문을 하고 있다. 그것은 진정한 지역사회 예술의 의미를 몰라서 하는 소리다. 사실 지난 몇 년간 공공미술이라고 해서 낙후된 지역에 가서 벽에 꽃그림을 그리고, 주민들이 붓을 들게 하는 수준에서 주민 참여라는 성과를 내세우지만, 내가 보기에 그것은 나쁜 ‘착한 미술’의 결과일 뿐이라고 본다. 예술은 결코 장식품이 아니다. 과연 그러한 예술의 면모가 어떻게 지역사회에서 정치의식을 불러일으키고, 지역에 대한 자부심을 키우는 일이 되겠는가. 또 지역사회 예술이 갖는 예술적 실험을 어떻게 기대할 수 있겠는가. 여전히 문제가 남는다. 지자체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진정한 의미의 커뮤니티 아트의 실험과 실천인지, 아니면 지역사회에 대한 예술의 ‘실적’이 필요한 것인지를 물어야 한다.

구영민: 앞서도 언급했지만, 우리나라의 지방자치화는 도시 간 경쟁을 격화시켰다. 그러한 경쟁 속에서 예술 자체가 장식용으로 격하되는 예가 있는데, ‘예술의 전당’과 같은 특권적 장소가 우후죽순처럼 늘어났다는 거다. 지난 십수 년 동안 주요 도시에서는 이러한 ‘전당’형 예술을 지향해왔다. 서울의 경우를 보면, 일단 접근이 힘들고 찾아가기도 힘들다. 그렇게 힘들게 찾아가서 보고 나오는 예술은 대중과의 소통에 문제가 있다. 파리의 오페라하우스가 이와 대조적인 이유는 건물 자체의 건축성보다는 장소가 사방으로 연계되어 접근성이 좋다는 데 있다. 지하철역에서 나오자마자 바로 앞에 보이기 때문에 약속 장소로 이용하기에 적합하고, 망중한을 즐기기에도 아주 좋다. 이처럼 건축과 도시의 관점에서는 사람들이 어떻게 장소와 기억을 활용하느냐가 중요하다. 에펠탑도 있지만 파리의 오페라하우스는 사실상 도심 최고의 랜드마크다. 예술 장소인 건물 하나가 도시의 랜드마크가 되었다면, 이제는 커뮤니티 자체가 지역의 가치적 랜드마크가 되는 그런 의미에서 아트팩토리가 담론화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런 방법론을 생각하는 데는 어쩔 수 없이 행정적인 측면이 개입될 수도 있고, 자본이 개입될 수도 있다. 다만 어떻게 이들의 간섭을 극소화하면서 자발적인 발전을 유도할 수 있는가가 문제다.

박 교수님의 말씀처럼 예술과 지역사회와의 괴리를 방치한다면 아트팩토리 운동은 도시 ‘르네상스’ 사업처럼 또 다른 미사여구가 될 수밖에 없다. 오늘날 르네상스, 리뉴얼, 리해빌리테이션 등 알파벳 ‘R’과 ‘E’ 들어가는 기획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우리의 경우 이 ‘RE-’는 지난 반세기 동안 근대화를 통해 급격하게 팽창된 도시 공간의 황폐화를 재고해보자는 의미에서 아예 ‘제로시티’를 만들자는 기본적인 전략이 되어버린 것 같다. 국민들에게 새로운 비전을 갖게 해주고, 투자 유치 등을 통한 경제적인 효과를 보면서 역사와 문화 보존을 통해 근대화의 횡포와 대립되는 의지를 갖겠다는 의도가 크다고 본다. 그래서 근대화로 인해 사라졌던 청계천도 다시 생겨난 것이고, 성곽도 복원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무리한 사업들을 통해 이제는 역사나 문화의 이름으로 짧았던 근대의 자취를 백지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이상적인 얘기겠지만 근대화의 자취도 시대의 흐름으로 인정받는 도시 풍경을 위해 ‘아트팩토리’ 운동이 오히려 저항적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행정기관이나 단체들은 빠른 시간에 효과를 얻으려는 업적주의보다는 하나하나 모습이 변해가며 완벽해지는 단계별 계획을 세워 긴 시간을 통해 보여주려고 노력해야 한다.


김윤환: 문래동도 이슈가 있는데, 특히 시의회에서는 작년 5월 8일 준공업 지역에 대해 80%까지 주상 복합 등을 지을 수 있도록 조례를 개정함으로써 문래동 개발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미 2~3년 전부터 개발회사 두 곳이 문래동 지주들과 접촉하면서 여기에 아파트 형 공장을 지을 것이냐, 주상 복합으로 지을 것이냐 등을 논의하고 있고, 재개발조합을 만들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새로 이주한 주민들은 그 지역이 빨리 개발되길 바라는데, 최근 문래동의 예술 활동이 알려지면서  ‘그것도 나쁘지는 않네 뭐’ 정도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구청에서는 영등포가 특징이 없으니 지역 특화 문화로 문래동 창작촌을 주목하고 있다. 창작촌을 키우고 싶은데 구 자체는 별로 힘이 없으니 시에 계속 요구하고 있는 중이다. 앞으로 창작촌을 포함한 영등포 지역의 종합 발전 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영등포역 근처 경방 타임스퀘어가 9월에 개장하는데, 10만 평이 넘는 규모의 복합 쇼핑 타운과 창작촌을 어떻게 연결할지도 중요한 과제로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구영민: 문제는 서울시라는 공간이 실질적으로 잡종적 도시라는 점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있다. ‘잡종’이라는 말은 나쁜 뜻이 아니라, 시간적, 물리적  다양한 형상이 배어나는 서울의 특징적인 풍경을 의미한다. 복합 쇼핑 타운이 있는가 하면 이와 상반되는 소규모 공동체도 공존하는 장소적 가치를 어떻게 발견하느냐 하는 것이다. 실질적으로 서울의 도시 블록들을 보면, 거리면의 껍데기는 크고 빛나는 반면 이들이 싸고 있는 뒷부분은 인간적 스케일이고 비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문래예술공단 지구는 수공업형 공장 스케일로 주변의 아파트형 공장이나 사무실 건물에 비해 군집 밀도가 높으면서도 매우 인간적인 스케일이라는 점이 매력이다. 반면에 코너에 있으니 부동산 가치도 굉장히 클 것이다. 구청에서야 이 지역이 소득을 창출하는 수입원이 되는 것을 선호할 수도 있겠지만, 문래동이 의도하지 않았던 시간적 가치를 ‘재’역사화하는 것도 계획의 범주에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그래야 굉장한 매력으로 작용할할 수 있을 것 같다.

김윤환: 작년에 모 민간 개발업체에서 자기들에게 협력하면 공간 일부를 창작 공간으로 할애해줄 수 있다는 제의를 했다. 만약 주상복합식 개발이 추진된다면 자생적인 군락지를 형성하고 있는 예술 생태계로서의 기능은 끝날 것이다. 항간에는 민간 개발도 쉽지만은 않을 거라는 소문도 돈다. 창작촌이 형성된 문래 철재상가 단지는 1970년대에 철재상가 단지로 조성할 때부터 40평, 80평씩 개인에게 나누어주었다. 그렇게 해서 80명의 지주를 만들어낸 건데, 나중에 후손들이 이어받으면서 더 쪼개져 120~130명의 소지주가 생겼다. 이 때문에 개발 협력이 쉽지는 않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울시의 아트팩토리가 먼저 들어서게 된 것이다. 우선 창작촌 내 빈 공간을 물색하다가 공간이 없으니 길 건너편 철공소 자리로 잡았다. 그러나 이는 매우 제한적이다. 앞으로 창작촌의 원래 취지를 살리려면 종합적인 검토와 정책 방안이 필요하다.

박신의: 이제 정리를 해야 할 것 같다. 그렇다면 조금은 거시적으로 도시계획에서 아트팩토리가 갖는 의미가 있는데, 이것이 단순한 
‘시설’의 연장이 아니라면 아트팩토리를 일종의 ‘운동’ 개념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문래동에 소재한 서울시 시설물로서의 아트팩토리만이 아니라, 그곳에서 작업하고 있는 예술가들의 작업실이 갖는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겠다. 사실 서울시조차 문래동 지역 재개발에 대해 아무런 대안을 내놓지 못해 예술가들의 작업실이 철거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일시적이나마 그곳에 있었기 때문에 그 자체로 일정한 사회적 변화의 동력으로 작동되길 바란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작업실이 철거된 후 개발 중심의 도시계획 정책에 변화를 줄 수 있다면, 그것은 자본주의적 가치에 저항하는 힘으로서 예술의 가치를 말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붙박이시설 개념만이 아니라 하나의 정신이자 이념이며, 큰 구도에서는 도시개발에 대한 견제 역할로서의 아트팩토리라는 것으로 정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런 거시적인 입장에서 마무리 말씀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구영민: 아까 김윤환 단장이 말씀하셨던 ‘생태(ecology)’라는 말은 이 좌담의 매우 중요한 키워드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생태’에는 계속 성장하는 것이면서 또한 죽어간다는 뜻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아트팩토리와 같은 풀뿌리 문화운동은 스스로 생겼다 사라지면서, 또는 지속적으로 지역에 주재하면서 시간과 장소의 의미를 연결해주고, 죽어 있는 지역 커뮤니티를 재활해주는 미시적인 측면이 강하다. 반면 거시적인 입장에서는 아트팩토리를 정책이라는 개념에 담아두기보다는 그런 정신을 어떻게 담론화해 지속적인 도시 탐구 대상으로 삼는가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비록 현재는 부동산 가치 때문에 이러한 시도가 관철되기 힘들더라도 지역의 문화적 가치 상승이 현재 화두가 되어 있다면, 차제에 이런 것들을 여러 군데로 분산해 도시를 재생하는 인자로 사용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인천과 같은 도시는 도시 자체가 분산형이기 때문에 이러한 미시적 접근이 진정한 의미의 도시계획을 추진하는 데 활력소가 될 것 같다. 창작 공간 추진단 측에서는 적합한 장소들을 계속 물색하면서 그것이 미래에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청사진을 지속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시도들은 건축가나 도시 디자이너들과 지속적인 관계를 가지며 진행해야 한다. 그래야 예술이 따로 떨어져 장식으로 소외되는 잘못된 경우를 배제할 수 있다. 결론을 말하면, 아트팩토리 운동이 시작되었다는 것은 문화적으로나 도시 건축적으로도 매우 긍정적이라고 본다. 다만 정치적 공간 창출 의도에 희생하지 않고, 커뮤니티 가치 창출의 토대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

김윤환: 창작 공간 추진단은 서울 곳곳에 창의 거점을 만들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현재까지 8개의 공간을 추진하고 있다. 각 공간마다 가능하면 지역 특성도 살리고, 그 건물이 원래 가지고 있는 역사성도 살리면서 지역 커뮤니티와 함께 숨 쉬는 공간이 되도록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은 여러 가지 행정적인 한계와 정책적 준비 부족을 느끼고 있다. 앞으로 해결해야할 과제가 많다.

박신의: 나는 아트팩토리 논의에서 왜 자꾸 왜곡이 일어나느냐 하는 부분을 강조하고자 한다. 이는 기본적으로 창작 정책이 없기 때문이다. 안정적인 공연 연습실이나 작업실 지원 정책이 없는 상황에서 모자라는 창작 공간을 단기적으로 제공하기 때문에 이런 식의 왜곡이 일어난다. 구영민 교수님이 말씀하셨지만, 나 역시 도시 재생에서 아트가 절대적이고 유일한 해결책은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아트팩토리가 지역에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가져오는 다양한 파급 효과가 중요한 것이다. 이를테면 창작 공간이 있었기에 주민들 스스로 창의적으로 자신의 지역을 바라보게 되면서 자신의 집 담을 허물어가는 마을 만들기 운동을 주도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아트를 이야기하는 것은 장르로서의 아트가 아니라 아트의 존재 방식과 창의력, 그리고 그것이 갖는 사회 통합적 반성과 성찰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커뮤니티 회복도 바로 그런 맥락에서 가능하다고 본다. 더 이상 인프라를 만들어 제공해주는 식이 아니라 시민이나 예술가 스스로 자기 공간을 만들어가게 하는 것, 스스로가 창조적인 주체가 되게 하는 것이 관건이다. 아트팩토리 역시 이런 맥락에서 접근하려는 것이지, 결코 예술가들의 지분이나 혜택의 개념이 아니라는 사실을 전제하고 싶다.


구영민: 한때의 벤처기업 활성화와 똑같은 경우다. 벤처 정신이 전통적인 도시 공간과 만나도록 시도한 것이 종로 소호(스몰 오피스 홈 오피스)의 출현이었는데, 이 계획도 반짝 정책의 일환으로 흐지부지 사라져버렸다. 아트팩토리는 일종의 은유이고 상징이다. 그것의 가치가 어떻게 지속적으로 주변과 관계를 맺느냐가 중요하다.

김윤환: 아파트 같은 생활공간 조성 때 기본적으로 문화 공간이나 창작 공간을 조성하는 것이 보다 진보된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아트팩토리는 단기 효과를 주목한 정책적 필요에 따른 산물로 봐야 한다. 이것을 좀 더 나은 정책 생산을 위한 중요한 밑거름으로 활용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박신의: 국제 아트팩토리 연합 사이트(www.artfactories.net)를 방문해보면 ‘experimentation, transmission, solidarity’를 슬로건으로 내세우고 “예술적 창의성과 시민의 자발성으로부터 발생되는 사회적 가치의 플랫폼이 형성되는 곳”으로 역할을 정의하고 있다. 우리 역시 이런 식의 이슈를 생각해본다면 예술이 가질 수 있는 도시계획에서의 역할, 저항의 힘 등을 떠올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트팩토리를 통해 예술의 새로운 역할, 예술 공간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논의되고 이로써 풍부한 담론들이 만들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구영민: 어쨌든 아트팩토리가 물리적인 형체의 생산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저항운동, 그리고 시대적 반영으로 진행되어 여러 도시사회  정책에 반영되었으면 한다. 꼭 공장과 연계시키지 않더라도, 작게는 아파트 단지부터 크게는 도시 경계 지역의 재생 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공간 창출, 다양한 접근이 병행되었으면 좋겠다.


SPACE 2009년 9월호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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