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은 올해의 작가로 서용선을 선정했다. 최근 전시가 뜸했던 그다. 왜 그일까? 긴 시간 ‘역사’를 그리는 보기 드문 화가이기 때문일까? 누구보다 열심히 오늘의 우리 모습을 포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기 때문일까? 국립현대미술관이 서용선을 통해 오늘날의 한국 현대미술계에 던지는 화두는 무엇일까? 단서는 있다. 서용선은 역사의 사각지대를 조명함으로써 역사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인물의 감정을 친절하게 묘사하지 않는 대신 강한 색채 대비나 파격적인 선 긋기를 통해 표현주의적인 정서를 전달하고 있다. 그의 관심은 욕망, 불안 등 인간의 내면이다. 이는 그를 단순한 역사화가로 규정할 수 없다는 말이고, 그만큼 독보적인 작품세계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궁금증을 풀기 위해 오랜만에 그의 작품이 전시된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을 찾았다.


Gye Yu Nyun, acrylic on canvas, 300x500cm, 2009

전시 구성은 지난 20년간 그가 탐구한 역사와 신화 속의 인물, 현대인의 불안한 초상 등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개인들의 실존적 고통이 오늘날 우리들의 내면에서도 면면히 발견됨을 이야기하고 있다. 작가는 다음의 말을 전시장 한쪽에 붙여놓았다. 

 “우리의 지나온 과거와 그 연장으로써의 현장인 삶의 공간은 연속되어 있다. 그것은 기억을 통해 연결된다. 우리의 삶, 그리고 역사는 기억과 그것의 실천적 활동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들은 역사와 신화를 비현실적인 것으로 생각하거나 우리와 상관없는 아주 특별한 것으로 여긴다. 우리의 비극이 여기에 있다. 망각은 인간에게 치유와 동시에 불행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Exhibition view at National Museum of Contemporary Art, Korea, 2009

단종에 얽힌 역사적 사건 속의 인물과 팍팍한 일상의 현대 도시민이 이번 전시의 메인 구성 요소다. 두 가지 주제는 선생이 오랜 기간 천착해온 것이기도 하다.
내가 미술을 시작한 시기부터 관심을 갖고 흥미를 느껴온 부분이 인간, 즉 사람이다. 인간은 겉모습만 보고는 절대 판단할 수 없다. 습관, 행동, 태도, 문화, 살아가는 방법 등이 오랜 시간에 걸쳐 한 인간을 만든다. 그래서 역사와 신화는 인간을 보는 가장 좋은 예다. 특히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이 정치적 권력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인물들이다. 이는 지금 내 앞에 있는 한 사람을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지, 그리고 더불어 내가 나를 이해하는 방법과도 연결된다. 어떤 사람을 보면 나와 비슷한 점이 느껴지고 정감이 간다. 감정 같은 것이 드러날 때 특히 더하다. 나는 그런 부분에서 나와 다르거나 같은 부분을 판단하고, 그런 것들에 대해 묘한 흥미를 갖게 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거기에서 특히 공통 요소들을 분석하고 차이를 느낀다. 분명한 사실은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을 내 마음에 맞게 표현해내는가가 곧 내 작품의 실험들이 아닌가 한다. 예를 들어 역사적인 사건들을 다루는 것은 일종의 샘플이다. 인간들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그런 행동들이 나오는가. 아마 그런 건 예술가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디에 관심을 두어야 하는지 등 내가 스스로에게 요구하는 정신적인 압박일 수도 있다.

이번 전시는 중간-회고전  형식을 띠고 있다.

미술관의 연락을 받고 처음에는 신작으로 전시를 구성하려고 했다. 주제에 대해서는 크게 생각하지 않고 내 스스로 실험을 한번 크게 해 보고 싶었다. 그런데 김경운 학예사와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한두 개의 주요 주제에 맞춰 전시를 구성하는 것이 좋을 듯해 생각을 바꿨다. 사실 이 전시는 내 회고전이 아니다. 작품 숫자로 보면 구작과 신작이 반반 정도이긴 한데, 개인적으로 새로운 작품에 관심이 더 많이 간다. 단종과 관련된 역사를 중심으로 앞뒤의 현대와 과거, 그리고 단종 관련 역사 이전의 신화를 담아내 그것을 시간의 축으로 해 현대까지 끌어낸 것이 이번 전시 구성의 특징이다. 어찌됐건 나를 새롭게 볼 수 있는 가능성을 준 것 같아 만족스럽다.


MAGO tribes, acrylic on canvas, 300x500cm, 2009

근작이 훨씬 더 강한 느낌을 준다. 예전 작품에 비해 이야기들이 더욱 정교하고 간결하게 구성되어 있다.
최근 내 주변을 정리를 해보니 5, 6년 넘게 후회스러운 시기를 보낸 것 같았다. 이번 작품들은 그런 것들에서 나 자신을 발견하고, 뭔가 좀 더 열심히 해보자는 의욕이 북돋워지는 것과 연관된다. 조형적으로는 그림을 그리는 방법에서도 약간의 변화가 있다. 제일 큰 변화는 1990년대의 평면적인 요소들을 받아들인 점, 그러면서 개인의 양식이라고 볼 수 없는 공간감 같은 것, 재현적인 요소 등이 뒤섞이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전에는 현대성이라는 것을 색면과 일치시켜 성취하려고 했다면, 이제는 그 방향을 틀었다는 말도 된다. 그런 것 중 하나가 선이다. 전에는 내가 색, 면을 갖고 작업을 많이 했다면, 지금은 선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고 시도하기도 한다. 또 하나는 최근 몇 개의 작품에서도 기획했지만, 한 인간을 대상으로 좀 더 확실하게 표현하고자 하는 점이다. 주제를 접근하는 방법적 측면도 바꿨다

작품 속에 역사나 현대인의 삶을 끌어들이게 된 계기나 이유가 있나?

여러 가지 개인적인 상황과 맞물려 있다. 우선 대학에서 공부를 마치고 작품 활동을 시작하던 때, 개인적으로 ‘현대성’이라는 개념에 상당한 중압감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얼마 후 그것이 반전되어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면이 연결되지 않고는 현대성을 유지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됐다. 사실 과거에는 실험미술이나 현대미술을 더 즐겼고, 그에 대한 호기심이 더 많았다. 오히려 전통미술이나 오랜 역사 속에서 형성된 미술사 속 작품은 좀 게을리 보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 점에서 보면 대학 졸업 후 현대미술에 대한 아카데믹한 바탕 없이 시작했기 때문에 현대적인 작가로서의 면모를 꾸준히 밀고 나가지 못한 것 아닌가 생각한다. 그리고 그로 인해 역사를 통해 형성된 전통적이고 체험적이며 사실적인 인간의 오래된 이야기에 내가 그냥 묻어가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 그래서 그런 문제를 여러 방면에서 생각하고 또 생각이 전환되고 변하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보다 더 심한 진통을 겪기도 했다. 그런 상황을 극복하면서 지금의 작품을 하게 됐다.

정신분석학적 대상이 되기도 했다.

한 정신과 의사가 내 전시를 보고, 내 작품을 예로 들어 정신분석 리포트를 작성했다. 실제로 대학 시절에 정신병 비슷한 것을 겪기도 했다. 나는 보고서나 연구 논문 외에는 글 쓰는 것을 상당히 억제했는데, 몇 년 전 옛날이야기를 정리해서 전시회 서문처럼 발표했다. 거기에 아버지에 대해서 언급했는데, 그 글을 그가 본 것이다. 내 글과 작품이 어울리면서 정신분석학의 대상이 되었다. 그는 내 작품을 두고 ‘시대와 불화했던 아버지의 메타포’라고 했다. 그런데 사실 나는 오히려 아버지에 대해 신뢰감을 갖고 있었다. 내 아버지가 경제적으로 능력이 있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그의 능력을 의심해본 적은 없다.

스스로 어두운 작가라고 생각하나?

나이가 들어 되돌아보니 내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청년기에 사회나 인간의 어두운 측면을 많이 접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점이 내 작품 활동이나 내용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인정한다. 물론 개인적으로 그런 면을 중시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그것은 피할 수 없는 부분이다. 내 역사가 작가로서 내 성격을 규정짓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Drawing, 2009

작품 안에 항상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나는 미술사적 지식 같은 걸 부정하고 회의하는 편이다. 오히려 원시미술의 작가라고 볼 수 있는 한 인간에 대해서 아주 생생한 공통성을 느낄 때가 많다. 반구대 암각화들이나 고구려 벽화 같은 걸 보면, 오랜 시간 전에는 이렇게 살았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아주 진하게 들 때가 있다. 그럴 때 현대미술이 이룩한 많은 복잡하고 실험적인 작품 이론들이 완전히 제거되고 서로 평행선상에 있는 느낌을 받는다. 미술은 나날이 발전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림이라는 것이 내 모든 관심, 세상에 대한 호기심들을 뭉뚱그리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면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나는 글과 그림의 관계, 즉 문학과 미술이 전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문학가이기도 하고, 어떤 면에서는 정치가이기도 하다. 내 스스로 문학가의 역할에 대한 미련을 갖고 있는 편이다.

본인을 끌어당기는 이야기의 종류가 있나?

나는 궁금한 게 많다. 그리고 그것을 끊임없이 표현하고 싶다. 앉아서 얘기하던 사람의 모습이나 얼굴에서도 순간적으로 자극을 받는다. 또 글을 읽다가, 신문기사를 보다가, 어떤 사람의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듣다가도 문득 영감이 떠오른다. 그런 것들이 첩첩이 쌓이면 시간에 따라 밀려가는 거다. 내 경우에는 그런 자극이 너무 많아 오히려 작업에 방해가 될 정도다. 끊임없이 이야기를 추구하고 또 천성적으로 그런 것을 좋아하는 성향이 있다. 어떤 이야기에서도 재미있는 요소를 잘 발견한다.

작품 속 이야기를 구성할 때 치밀하게 계획하는 편인가?

치밀한 편은 아니다. 직감적인 면이 더 큰 것 같다. 치밀하다는 것은 조형적인 측면에서 작업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는데, 내 경우 어떤 작품은 드로잉을 굉장히 많이 할 때가 있다. 이것이 생각을 발전시키는 과정이라 생각하면 치밀한 면도 있다고 말할 수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캔버스 앞에 서서 그림에 대한 흥이 나는 순간 큰 틀이 결정되는 것 같다. 인물로 시작할 때도 있고, 큰 색면으로 시작할 때도 있다.

입체 작품은 드로잉을 많이 했다. 회화작업의 경우는 어떤가?

회화 작업은 드로잉을 그렇게 많이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끊임없이 드로잉을 해 고쳐나가야 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근래에는 중점을 두고 제작하는 작품의 경우 드로잉을 통해 작품을 발전시키는 방법을 터득한 것 같다. 특히 입체 작품은 계획적이지 않으면 작업을 진행하면서 우왕좌왕하게 되기 때문에 그런 습관이 생겼다. 예를 들어 큰 설치 작품의 경우에는 용접기술자가 접합하기도 하고, 몇 사람이 협조해서 내 생각을 발전시키기도 하기 때문에 그들한테 내 의견을 전달하기 위해 방법적인 측면에서 그린 스케치들이 꽤 있다. 그 사람의 기술적인 방법이 결국 내 작업이 되기 때문에 어떤 때는 단지 의사소통을 위한 스케치도 많이 나온다. 그중에는 이걸 어떻게 기술적으로 전달할 것인가를 묻기 위한 드로잉도 있다.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드로잉이란 말인가?

그렇다. 또 하나는 그런 드로잉들이 내가 바라는 모습으로 금방 되는 게 아니고, 구체적인 재료의 조건을 갖고 있으니 타협을 해야 한다. 그중 하나가 바깥에 있는 나무 작업과 같은 경우다. 일단 가장 고려한 부분이 무게가 많이 나가게 되는 위험 요소다. 작업하면서도 그렇고 설치해놨을 때도 그렇고, 드로잉들이 많이 변했다. 거기에 들어 있는 이 작품들을 보면 예산, 제작 방식 등 곁가지가 굉장히 많다.


One hundred faces, steel, variable size(detail), 2007

작가와의 만남에서 “미술 작품을 만드는 일도 노동의 하나일 뿐이다”라고 했다.
작가라는 개념은 근대에 와서 다른 직종과 구분하기 위해 부각되었다. 르네상스 시대 때 작가는 전문가로서 훨씬 더 종합적으로 건축, 미술, 디자인 등 분야를 모두 통합해 활동했다. 근대에 오면서 지금의 작가 개념으로 변했다. 이전에도 작가라는 개념에 작품을 만든다는 의미가 물론 있었지만, 그 사람들의 행동이나 존재의식은 지금 얘기하는 식의 작가 개념이 아니었다.
그것이 예술이란 측면을 하나의 독특한 장르로 만든 점도 있지만, 나는 오히려 잃은 점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 스스로 자기 속에 함몰되기도 하고, 더 큰일을 할 수 있는데도 자본주의 시장에 빠져버리기도 한다. 종합적인 인간으로서의 작가를 잃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과도한 작가주의에 대해 회의적이고, 경계해야 한다고 본다.

앞으로 또 다른 변화가 있을 것 같다.

그 변화로 인해 표현의 폭이 넓어지지 않을까 생각하고 또 넓어지고 싶다. 이번에는 의욕적으로 몇 개월에 걸쳐 입체 작업도 하며 그런 걸 조금 더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앞으로는 현장작업도 해보고 싶다. 지난 8년간 강원도 태백의 탄광촌을 다니며 작가들과 작업을 했다. 그런데 거리도 굉장히 멀고 나이가 드니 몸이 피곤해서 방문 횟수를 조금 줄이고, 집 근처 지역을 대상으로 한 활동을 하려고 한다. 또한 지역 주민의 삶을 대상으로 다양한 매체를 이용한 접근도 해보고 싶다.
아까도 얘기한 것처럼 이제 나는 시간에서 좀 자유로워졌고, 나이는 들었지만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이 됐다. 그러니 인간을 좀 더 정면으로 보고 싶다는 욕구가 강하게 생긴다. 전에는 인간을 환경으로 보자는 식이었다. 예를 들어 역사적인 사실도 사건의 장면들을 통해 다루었기 때문에 인간에 대한 이야기들 즉 사회성과 정치성만 드러났다. 그 사람이 왜 그렇게 됐는지 그걸 분석하는 쪽으로 간 거다. 시각예술은 직접적으로 인간을 통찰하는 장르라고 생각한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큰 추상 같은 것이 그런 신호가 아닐까 하고 나름대로 정리해보았다. 이야기로 작품을 할 때와 조금 달라질 것이다.

그 지향점은 무엇인가?

인간에 대한 탐구다. 자유와 저항에 대한, 작가 스스로에 대한, 그리고 보편적인 인간의 삶과 가치에 대한 주목 등이 지향점이라 할 수 있다.


인터뷰 박성태 편집장

<올해의 작가 2009 - 서용선> | 7.3~9.20 국립현대미술관


SPACE 2009년 8월 (5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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