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Company Making Everything’의 단어 첫글자를 딴 acme는 2007년 런던에서 설립되었다. 이름처럼 다양한 작업을 통해 건축계에 이름을 다져가고 있는 이들은 런던에 기반하지만 영국인은 단 한 명도 없는, 9개의 서로 다른 국적을 가진 젊은 건축가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구성원들의 다문화적인 특성을 배경으로 acme는 독일, 한국, 콜롬비아, 스페인, 바레인 등 전 세계를 상대로 작품 활동을 진행해오고 있다. acme의 다국적 성향은 건축사무소가 어느 특정 지역에 기반하느냐보다 어떤 방식으로 소통하는지의 문제가 중요함을 보여준다. 「공간」은 최근 acme가 제안한 계획안 3제와 인터뷰를 통해 젊은 건축가 집단인 acme를 주목한다. 비위계적인 조직을 지향하며 팀원 모두 동등한 입장에서 디자인 문제를 풀어간다는 acme의 건축적 아이디어를 들여다본다.

acme는 어떤 건축사무소인가? 회사의 성격을 간단히 설명해달라.

acme에는 직급이 없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이는 가끔 혼란을 가져오기도 하지만, 가장 큰 장점으로 작용한다. 한국에서 건축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어느 누구도 갓 졸업한 풋내기의 의견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세계적인 건축가의 사무실 또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본다. 디자인은 한 사람의 강력한 지휘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acme는 때로 창의력을 가로막는 이러한 현실에 대한 반작용으로 동등한 의견 교환적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우리는 누구 한 사람을 대표 건축가로 내세우기보다 모두의 아이디어가 모인 더 큰 실체로서 acme를 내세운다. 중세시대 상공업자들의 동업자 조직인 길드가 우리를 가장 잘 설명하는 단어라고 본다.

첫 프로젝트부터 최근 작품까지 acme는 어떻게 변화해가고 있나?

팀원들이 어떤 한 분야의 전문 지식을 갖고 있지 않아 다른 사무실에 비해 내부에서 보내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다. 하지만 이것은 스스로 비전문성을 극복하는 과정이 되고, 상대적으로 많은 리서치와 테스트를 통해 디자인이 다듬어진다. 몇 번의 시행착오는 더 좋은 프로젝트를 만들어내는 인고의 시간이다. 우리의 작업 또한 구성원의 변화나 여러 시행착오를 통해 변해왔다고 생각한다. 초창기 사무실은 foa 멤버들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상당부분 foa를 닮아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새로운 멤버들의 합류로 설계 과정에서 새로운 방법론이 도입되었고, 새로운 소프트웨어의 활용으로 한 가지 스타일에 얽매이지 않게 되었다.

acme의 작업 방식 혹은 시스템적인 측면을 설명해달라.

우리에겐 특정한 작업 스타일이 없기 때문에 어려운 질문인 것 같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는 어느 특정 스타일로 작업하기가 힘들고, 이점이 acme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구성원 각자가 실제로 프로젝트를 수주해오기도 하고, 각국에서 개최하는 공모전에 참여하기도 한다. 종종 건축주가 찾아오기도 하지만 역으로 우리가 건축주를 찾아가기도 한다. 리모델링이 필요해 보이는 건물을 찾아 적합한 프로그램을 제안하는 식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새로운 동업자를 선발하기 위해 사무실에서 모든 포트폴리오를 다 같이 심사해 최종적으로 인터뷰할 대상을 선택하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무정부 상태로 보이는 우리의 시스템은 파트너 모두가 책임을 나눠 가지면서 동시에 여러 프로젝트를 각기 다른 스타일로 끌어올리는 원동력인 셈이다.

런던에 베이스를 둔 사무실이지만 팀 멤버 각자가 다양한 국적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언어적인 문제는 논외로 하고 디자인 과정에서 내부 커뮤니케이션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직원들의 국적이 다양하다는 점이 세계 각지의 건축주들을 상대하는 데 유리한 점으로 작용할 것 같다.
한 프로젝트를 오랫동안 진행하다가 보면 어느덧 시야가 좁아질 때가 있다. 그래서 중간 중간 전원에게 프로젝트를 발표하고 피드백을 받는다. 서로 다른 문화와 다른 교육 배경으로부터 나오는 피드백은 프로젝트를 완전히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기도 한다. 물론 세계 각지의 건축주를 상대할 때 이런 다국적 경향은 유리하다. 세계의 거의 모든 인구가 영어를 제2국어로 삼고 있는 현실이니 언어적인 것보다 문화적인 측면의 유리함이라고 생각한다. 일례로 무슬림 국가인 바레인에서 지금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바레인 출신 직원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했다. 실제로 사무실을 방문한 건축주들이 다문화가 공존하는 우리 사무실에 깊은 인상을 표하기도 한다. 구성원들의 국적은 한국,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콜롬비아, 바레인, 중국, 오스트리아다. 공교롭게도 영국인은 없다.

유럽에서 소규모 건축 집단으로 활동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나? 유럽의 장기적인 경기 침체를 감안할 때 acme 역시 세계시장을 무대로 활동해야 할 텐데,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나름의 방안이 있다면 무엇인가?

앞서 언급했듯이 우리의 가장 큰 장점은 다국적 구성원을 배경으로 한 유연성이다. 이미 가지고 있는 이 장점을 극대화하는 것이 세계무대에서 생존할 수 있는 경쟁력이 될 것이다. 사실 인터넷 등의 정보수단이 발달한 현시점에서 한 장소에 모여 작업하는 게 큰 의미가 없다고 본다. 오히려 현지에만 정착해 개성이 사라질 수도 있는 노릇이다. 그래서 우리는 각국에 근거지를 두고 온라인으로 협력하는 네트워크형 설계사무소를 추진 중이다. 과거 대영제국이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불렸듯이, 전 세계에 형성된 네트워크 속에서 24시간 쉬지 않고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새로운 형식을 띠게 될 것이다.

이번에 소개하는 세 프로젝트가 acme의 전체 작품 포트폴리오 선상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나?

한국을 대상으로 진행한 UN기념관과 서울 강북시립미술관은 디자인 방법론 면에서나 국제적인 명성 면에서 acme를 한층 다각화시키고 업그레이드시키는 터닝 포인트였다. 이 둘은 미디어를 통해 acme를 알리게 한 작업들이다. UN기념관과 강북시립미술관은 비록 당선되지는 못했지만 건축 잡지 「MARK」의 2010년 1월호에도 소개될 예정이다. 또한 얼마 전 미국의 정치 뉴스를 주로 다루는 휴핑턴 포스트의 웹페이지에 UN기념관이 ‘미래의 11개의 놀라운 빌딩’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공모전에 도전하는 것은 acme에게 어떤 의미이고, 그 진행 방식에서 유럽과 한국의 차이가 있다면 어떤 점인가?

공모전에 참여한는 것은 우리에게 유일한 생존 수단이다. 항상 당선될 수는 없지만, 공모전이야말로 건축가를 깨어 있게 해주는 자극제라고 본다. 실제 프로젝트에서 건축의 프로세스와 디테일 그리고 현장에서의 문제점을 몸에 익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늘 흥미로운 건축 공모가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다. 한국과 유럽의 공모 방식은 표현 방법이나 제출 서류에서 약간 차이가 있다. 가장 큰 차이점은 진행 과정의 투명성인 것 같다. 예를 들어 얼마 전 한국에서 진행한 프로젝트는 제출안들이 어떤 것이었는지 전혀 알 길이 없다. 반면 유럽에서 진행한 거의 모든 프로젝트는 심사가 끝난 후 모든 안과 입상안 선정 이유를 모두 공개한다. 물론 한국에서도 많은 사람들의 귀추가 주목되는 굵직한 프로젝트의 경우에는 유럽과 동일한 진행 방식을 따르고 있으나, 그렇지 못한 중소 규모의 공모전에서는 이런 부분이 결여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한국 건축계에서 신인 건축가 발굴이 더딘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세 작업에서 디자인 프로세스상 가장 주안점을 둔 부분은 각각 무엇인가?

UN기념관은 먼저 충주시에서 제시한 관광 사업을 부흥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아이코닉한 건물로 계획을 시작했다. 안정적이고 전형적인 건축물보다는 차라리 파빌리온적인 성격이 두드러지게 한 것이다. 물론 UN의 이념을 건물에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가 근본적인 고민이었다. 작은 여러 개가 모여 고유의 아이덴티티를 유지하며 하나의 큰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건축으로 표현하는 것을 염두에 두었다. 또한 건물이 단독으로 존재하기보다 주변과 소통하게 하는 건축적 방법으로 무엇이 있을까를 고민했는데 아래위, 동서남북으로 가로지르는 건물 내 보이드와 건물을 휘감아 오르는 외부 계단, 그리고 건물과 대지 레벨과의 새로운 관계 설정에서 해답을 얻었다.

강북시립미술관은 새로운 전시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것이 가장 큰 이슈였다. 블랙 박스형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기존 전시문화를 넘어 관람객과 소통하며 주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건물을 고민했다. 미술관은 베드타운으로 계획된 노원구 중계동 내 근린공원에 자리하는데, 공원의 흐름을 저해하지 않고 미술관을 중심으로 새로운 커뮤니티 공간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또한 수평적인 전시 구성을 벗어난 입체적인 전시가 가능하도록 계획했다.

마지막으로 독일의 바일부르크 테라스는 전형적인 중세 고성을 배경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주어진 대지 면적에 비해 많은 면적의 프로그램을 부여하고 기존 경사 지형과 마을의 장소성을 헤치지 않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 개념을 전개했다. 경쟁 안들에 비해 기존지형을 살리고 그러한 맥락 속에서 프로그램을 전개한 점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이루어진 두 프로젝트는 모두 육각형 디자인 모티브를 가지고 있다. 이를 사용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근래에 ‘왜 육각형인가?’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항상 대답은 ‘왜 안되나’였다. 육각형은 사각형 그리고 원 다음으로 건축에서 가장 많이 응용된 도형이다. 이는 구조적으로 안정된 형태를 유지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실 지금까지 육각형은 대부분 파사드를 이루는 스킨의 모듈로 이용되어 왔다. 보로노이 패턴이 가장 많이 쓰인 육각형이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UN기념관에서 시도한 육각형은 입면에서 머물지 않고 내부로 침투해 공간 구성의 일부가 된다는 데 차별점과 특이점이 있다. 이는 ‘top solid’라는 파라메트릭 소프트웨어를 사용함으로써 실현이 가능했다. 건축의 형태뿐만 아니라 육각형 내부로 침투하는 모든 방향에서 이루어지는 동시다발적인 과정의 복잡성을 일반적인 3D 툴로서만 구현하기는 힘들다. 우리는 항상 새로운 소프트웨어의 등장을 관심갖고 지켜보고 있다.


인터뷰 acme x 정다영

SPACE 2010년 1월 (506호)



건축, 문화 소통의 공간 VMSPACE
http://www.vmspace.com
copyrightsⓒVMSPACE. All r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