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_서울문화의밤

지난 8월 29일, 서울 시내 곳곳에서는 각종 공연과 참여마당으로 이루어진 제 2회 서울 문화의 밤 (Seoul open Night) 행사가 열렸다.

정동, 대학로, 인사동, 북촌, 홍대 등 서울 5개 지역에서 저마다 특색을 살린 프로그램이 마련됐고, 티켓 한장으로 공연관람과 여러 문화공간을 입장할 수 있는 ‘문화패스’가 발행하여 운행하였다. 문화패스를 발급받은 시민들은 밤 12시까지 하루동안 100여개가 넘는 소극장과 클럽에서 다양한 공연과 이벤트, 연극과 뮤지컬을 저렴한 비용으로 즐길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더불어 올해 처음 신설된 ‘낮부터 즐기는 건축투어’에는 100여명의 다양한 연령층의 관심으로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그 중 대학로에서는 쇳대박물관, 갤러리 샘터와 이양, 이음책방, 갤러리 등 이색적인 공간들이 밤 12시까지 개방하여 전시관람, 유리공예체험 등 문화체험 행사도 즐길 수 있었다.

건축투어는 조병준(시인)님의 진행으로 이음책방, 마로니에 공원, 이화장, 낙산골목, 낙산공원 등을 둘러보는 ‘동숭동의 어제, 오늘’의 모습을 탐방하는 코스와 김재관(무회건축 소장)님의 안내로 건축설계사무소 ‘공간(空間)’에서 설계한 건물을 돌아보는 코스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흔히 건축을 ‘시대의 거울’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색이 바랜 사진에 등장하는 건물들을 통해 그 시대의 문화와 사상적 배경들을 쉽게 가늠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오래된 서울의 한 동네인 대학로 동숭동에서 우리는 어떤 흐름을 찾을 수 있을까? 건축이라는 시계를 통해서-

대학로를 들여다보면 한국의 현대사가 보인다. 창경궁이 창경원으로 전락하고 경성제국대학이 세워졌던 오욕의 역사, 당대의 수재들이 모여 철학과 낭만을 이야기하던 문리대의 전설. 그리고 투석전과 화염병과 최루탄이 난무했던 박정희 개발독재 시대의 초기 민주화 투쟁, 전두환 정권의 우민화 정책 중 하나로 출발했던 대학로 ‘놀자판 거리 만들기’의 80년대, 문화와 상업의 전투에서 KO승을 거둔 자본이 대학로를 장악한 90년대를 거쳐, 이후 여러 대학의 예술계열 캠퍼스들이 하나둘씩 생겨나면서 또 낙산의 40여동의 성냥갑 시민아파트가 헐리고 그 자리에 낙산공원이 생겨나며 그야말로 역동적인 혼돈이 펼쳐지고 있는 2000년대의 대학로까지.

대학로 한 귀퉁이에서 외롭게 싸우고 있는 작은 책방 이음서점에서 출발해 서울대 문리대의 전설을 품고 있는 마로니에 공원, 이승만 대통령이 머물렀던 이화장, 낙산 자락의 ‘무허가 하꼬방(옛 판자집)과 공민학교’ 시절의 기억을 여전히 담고 있는 골목길, 솔밭이 있던 바위산에서 대한민국 최악의 서민 아파트 단지를 거쳐 디카족들의 촬영명소로 떠오르는 낙산(駱山)공원 등 대학로의 어제와 오늘을 보여주는 공간들을 살펴 본 역사기행이었다.

더불어 그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한국건축의 주류이며 리더들의 집단으로 이어진 ‘공간(空間)’의 궤적 또한 고스란히 남아있다. 이미 작고한 건축가 김수근을 비롯해 김석철, 민현식, 승효상, 이종호 등 공간을 거쳐 간 이들은 아르코예술극장과 미술관, 샘터사옥, 동숭동 교회, 쇳대박물관, 그리고 대학로 문화공간까지 다양한 자취를 남기고 있다. 우리나라 대표건축가들의 계보와 그 시대에 사용된 양식과 즐겨 쓰던 어휘, 질료들을 통해 그들, 그 시대가 지향했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의미 있는 장소들이다.

특히 길잡이를 맡아주신 조병준 시인은 동숭동에서 나고 자란 50년 토박이로, 쉽게 듣지 못하는 대학로의 숨은 비화나 민담, 자신의 경험은 그야말로 대학로의 드라마이다. 툭툭 던지는 그의 직설적인 대학로에 대한 뼈있는 비판은 누구보다 짙은 애환이 서려있다.

대한민국 대표 ‘젊음의 거리’로 인파에 넘치는 대학로. 하지만 그 이면에는 상업화에 물들어 순수예술이 뿌리 내리기에 점점 힘들어지고, 대학생은 넘치나 책 몇권 팔기 힘든 서점. 20만원 무허가 쪽방부터 평당 2000만원이 넘는 상업건물, 그러한 진화아닌 진화와 함께 한 공간(空間)의 공간들. 새로운 명소로 재탄생한 녹음의 낙산공원까지.

그래서 대학로의 어제와 오늘은 곧 서울의 어제와 오늘이고, 대한민국의 어제와 오늘이다. 이번 투어는 그 연대기를 각자의 눈과 발로 직접 확인해보며 미래까지 진지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두 시간의 알찬 ‘쇼케이스’였다. 대학로를 찾을 일이 있다면 혜화역 1번출구 골목에 자리잡은 이음책방, 동숭동의 좁은 계단을 지나, 낙산공원에 올라 발아래 펼쳐진 대학로의 50년을 한 눈에 내려다 보는 건 어떨까? 낙산너머 성북동의 아파트 병풍 또한 탄성을 자아내는 장관이니 놓치지 말자.

공간 스페셜 리포터 성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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