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적 낙관론: 피할 수 없는 문제에 직면하는 윤리적 책임
 
건축은 물질성에 기초해 구축되는 것이며, 가시적인 영역 안에 부동의 형태로 존재해야 한다는 믿음은, 미디어 아티스트인 마코스 노박과 같은 사람들을 통해 절대적인 상식이 될 수 없음이 입증되었다. 그는 유동적이고 연산적이며, 전도와 전송이 가능한 건축의 비전을 제시한 범 매체 예술가로 건축과 미술, 음악과 공학을 넘나들며 혁신적인 개념들을 쏟아내고 있다. 그를 통해 가상공간은 물리적 공간으로 변모하고 현실의 공간은 가상공간의 유동성을 획득하게 된다. 건축은 물성을 가진 어떤 형태의 존재가 아니라 물질과 비물질이 서로 교류하는 일종의 현상인 것이다. 마르틴 하이데거는 이데아를 “눈에 보이는 무의미한 양상만이 아니라 들을 수 있고, 맛볼 수 있으며, 만질 수 있는, 즉 어떠한 방법으로나 접근할 수 있는 모든 것 속에 있는 본질을 구성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건축은 이데아를 현전시키는 예술의 개념과 물성의 연속체로 존재할 수 있을 것인가?  
 
2010년 공간화랑에서 ‘Turbulent Topologies’를 전시할 계획을 갖고 있다. ‘Turbulent Topologies’의 개념과 서울에서 보여줄 전시에 대해 말해달라.

 ‘Turbulent Topologies’는 전 지구적 거대 도시의 주요 조건이자 형식적 원칙으로 우리의 외적 건축과 내적 정신세계를 구축하는 ‘혼돈’의 개념을 탐색하는 것이다. 전시는 혼재된 층위와 교차된 흐름, 숨겨진 통로와 즉흥적 연결, 유동적 네트워크와 교란된 단층을 구현한다. 이 전시를 통해 나는 실재와 가상 혹은 그 양자가 교류하는 공간과 형태 및 서식 환경의 연속체를 제안한다. 개념을 구현하기 위해 가시적이거나 비가시적인 방법 모두를 동원하며, 하이테크와 로테크를 동시에 사용한다.

‘Turbulent Topologies’라는 주제는 우리의 삶과 건축물, 그리고 도시를 잇는 놀랍고도 종종은 비가시적인 결합 구조를 탐험하는 것이다. 우리가 도시, 건축물, 미디어를 ‘읽어’나갈수록 결합은 신속하게 상호 접속, 지름길, 보이지 않는 경로 및 이종 간의 합선(合線) 등의 방법을 통해 증식한다. 이러한 상황은 상위 속(屬) 간의 결합을 초래하고, 풀기 어려운 난제를 형성한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문제들의 정답을 찾아내려 하기보다는 일정 정도 그 문제를 따르는 것이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창조적 낙관론은 피할 수 없는 문제에 직면했을 때의 일종의 윤리적 책임이다. 이것은 시각의 명확성과 현실을 창조적으로 형성하기 위한 기꺼운 마음을 모두 요구한다. ‘Turbulent Topologies’는 우리가 처음에 비었다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빈 것이 아님을 보기 시작하는 것에 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공간이란 명확한 형태와 목적을 갖고 있는 여러 종류의 비가시적인 장막과 결합들이 교차하는 곳이다. 이것이 효과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처음에는 지각하지 못했던 것을 보는 방법을 습득함으로써 차후 그것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2008년부터 터키의 이스탄불과 스페인의 발렌시아 등에서 전시한 ‘Turbulent Topologies’는 큐브와 오브제들로 구성되었다. 이 커다란 구조물은 관객이 몇 개의 기호, 즉 긴장감, 소리, 색, 형태, 행동 등을 통해 상호작용함으로써 보이지 않는 형태를 읽어내는 행위를 구현하는 것이다. 나는 ‘보이지 않는 형태’가 주관적이거나 불명확한 것이 아니라 매우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며, 관람자의 주목이나 노력, 상상 등이 동원되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는 것임을 말하고자 한다.

건축적인 측면에서 이 전시는 현실과 가상세계 사이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연결선과 인터페이스를 통해 양자를 넘나들며 전혀 새로운 종류의 공간에 살고 있다는 생각을 탐색하고 있다. 예술적인 측면에서는 현존하는 양식의 역사적인 구분은 이미 낡고 오래된 것임을 주장하며, 모든 표현은 소리와 이미지, 형태, 공간, 문학, 연극, 그리고 춤 등을 넘나들고, 컴퓨터, 과학, 기술로부터 조각에까지 이르는 연속적인 매체 속으로 융합되는 통합적 연속체로 대체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서울에서 보여줄 전시는 터키의 이스탄불이나 이탈리아의 베니스, 스페인의 발렌시아, 혹은 앞으로 계획되어 있는 브라질의 상파울루에서의 전시와는 분명 다를 것이다. 서울이라는 도시와 공간사옥이라는 장소와의 일정한 감응이 존재하게 될 것이다.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무엇이 다를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리고 이것이 서울에서의 작품이 탐험하게 될 창조 과정의 일부분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이번 방한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 장소를 경험하고,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것이다. 사실 ‘Turbulent Topologies’는 본질적으로 자가 증식하고 진화하는 것이며 혼돈에 기초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때문에 사전에 정해진 모든 것은 기회인 동시에 방해일 수 있다. 매 순간마다 우리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거미줄처럼 얽힌 네트워크를 뛰어넘으며 세상을 새롭게 건설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전체를 완성하기 위해서 나는 반드시 작업에 성격을 부여하고 수행할 데이터들을 모으며, 동시에 이에 개방적일 필요가 있다. 



액상 건축의 개념은 어떻게 탄생했나?
 
나는 학부 시절 건축과 미술, 음악, 컴퓨터, 시, 철학, 역사, 수학, 물리학 등을 동시에 공부했다. 나의 관심사를 모두 개별적으로 공부하기에는 그 범위가 너무 다양했다. 그렇지만 나는 이들 관심사를 분리하거나 거부할 수 없었고, 대신 어떤 방식으로든 하나의 범주 안에서 구성하기로 결심했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은 1979년에 처음 배우기 시작했는데, 당시 나는 전자 및 컴퓨터 음악과 컴퓨터 애니메이션을 배우고 있었다. 당시 모니터 너머 가상세계의 현실성과 순수함, 그리고 선명함에 많은 감동을 받았다. 나는 이러한 미학이 무시되어서는 안 되며, 어떤 식으로든 반드시 건축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당시에는 건축에 적극적으로 활용되지 않던 컴퓨터를 이용해 건축을 구성하는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고, 이것이 ‘액상 건축’의 첫 번째 단계가 되었다.  이후 나는 컴퓨터로 가상공간에 건축을 구성하는 프로그램 제작을 시도했다. 나는 예술적이고 철학적으로 ‘미’라고 불리는 것에 대한 객관적인 이해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문제를 풀어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인공지능, 유전학적 알고리즘, 정보 이론, 그리고 그 외 다양한 종류의 지식도 포함시켰다. 프로그램은 구조적으로 잘 성립했으나 빌딩의 부분들이 공간 안에서 부유하는 매우 유별난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프로그램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면서부터 모든 부유하는 부분들은 정확해졌다. 이러한 상황을 수용하는 것이 두 번째 결정적인 단계였다. 나는 부유하는 부분들이 건축의 정상적인 정의에서 벗어난다는 것을 무시하기보다는 이 새로운 공간 현상을 에워싸고 있는 정의를 변경해야 한다고 결심했다. 이러한 작업을 나 혼자서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도 못한 채, 나는 가상공간만을 위한 최초의 건축을 창조하고 있었다. 

세 번째 과정은 이 새로운 공간과 새로운 건축에 집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었다. 컴퓨터 연산성과 가상성으로 인한 움직임에 관한 특정 의미들이 갑자기 명확해졌다. 예를 들면, 이 공간 안에서는 모든 것이 변경 가능했으며, 건축에서처럼 정의돼야 하는 그 어떤 물리학이나 중력 또한 존재하지 않았다. 심지어 관람자조차 설계되어야 했다. 또한 비록 눈에 보이진 않지만 정밀하고 역동적인 코드로 정의되는 관계들을 통해 모든 것이 결합되어 있었다. 

‘액상 건축’에 대한 아이디어는 이러한 과정에서 탄생했다. 그러나 그것에 한정된 것은 아니었다. 결국 ‘액상 건축’은 실제건 가상이건, 생물학적이건 기술적이건 이러한 복잡한 모든 인간 세대에 걸쳐 요구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와 관련된 가장 적합한 샘플은 진화 메커니즘과 관련된 생물체의 DNA 구조라 할 수 있다. 생물체의 DNA는 우리가 세상에서 발견하는 유전학적 알고리즘, 즉 예상치 못한 현실을 끊임없이 변형시키는 것처럼 생물학적 그리고 정보적 측면에서 모두 정밀하면서 역동적인 건축과 같다.

당시 전문 건축 분야, 심지어 가장 진보적이고 아방가르드한 디자이너와 건축가들조차 가상 혹은 비가시적인 공간을 건축의 일부로 수용하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가시적으로 존재하는 공간만을 인정하려 했고, 작업에 컴퓨터를 사용하자는 제안을 매우 강하게 거부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기술적으로 타협된 가상공간이 우리 시대에 맞는 새로운 건축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이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알고리즘을 적용해야 한다고 여겼다. 내게 건축은 시공간에 대한 문제였다. 나는 주거 공간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변함에 따라 건축도 변해야 한다고 확신했다. 건축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공간의 변화를 진지하게 점검하는 것과 같으며, 그 결과가 처음에는 생소할지라도 이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과 같다. 이러한 연구 결과로 나는 액상 건축 개념을 발표했고, 이것은 1980년대 중반의 일이었다. 



당신은 건축가, 미술가, 음악가, 이론가, 혹은 전 지구적 유목민 등 여러 가지 언어로 수식되곤 한다. 당신 자신을 직접 소개한다면 뭐라고 하겠는가?
 
반드시 어떤 명칭을 사용해야 할 때, 나는 종종 나 자신을 트랜스 아키텍트로 소개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대개 나를 아무런 라벨이 붙지 않은 ‘마코스’로 소개하는 걸 선호한다. 왜냐하면 기술(description)은 관습적인 면에서는 유용하지만 지적인 이해에는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나는 내 역할이나 나를 따라붙는 특정 라벨 때문에 정의되지는 않는다고 확신할 수 있다. 그보다는 내가 세계를 어떻게 명확하게 목도하며, 그 안에서 어떻게 효과적으로 창의적인 삶을 영위해 나가는가에 따라 정의된다고 말할 수 있다. 라벨은 나의 비전을 흐리게 한다. 또한 ‘전 지구적 유목민’이라는 말은 나를 소개하기보다는 내가 무엇을 하며 사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쓰는 흥미로운 기능적 정의다. 나는 많은 시간 여러 장소를 여행하기 때문에 이러한 표현이 나를 소개하는 유용한 개념으로 쓰일 때가 종종 있다. 그렇지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인터뷰 고원석 _ 공간화랑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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