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이상기후다. 며칠째 에어컨이 없어도 잘 수 있는 날이 이어진다. 한국 뉴스를 볼 때마다 폭염연속이라는데, 이건 무슨 현상인지.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사하라 사막이 가로지르는 북아프리카, 알제리다. 40도가 되서 펄펄 끓어야 할 판에 이렇게 선선한 걸 보니 여기 사람들도 뭔가 이상타며 난리다. 내가 에어컨을 사자마자 담날부터 밤에 이불을 덮지 않으면 추울 정도였다.

여기 사람들에게 다행인 건 8월 11일부터(내가 이곳에 온 지 딱 8개월째 되는 날이다) 시작된 라마단 기간이 덥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거다.

라마단은 아랍어로 ‘더운 달’을 뜻한다. 이슬람교도들은 새벽 4시부터 저녁 8시까지 의무적으로 금식하고, 5번 기도를 드려야 한다. 금식뿐 아니라, 담배, 물, 성관계도 금지된다. (남자랑 손도 잡아도 안되고, 키스도 안된다. 남편의 친구는 남편에게 전화해서 한 달 동안 내 손도 잡지 말라고 엄포를 내렸다.) 현재 내가 몸담고 있는 회사는 현지 직원이 거의 70명이 있는데 라마단 시작하고 나서 다들 예민모드다. 그도 그럴 것이 매일 한 갑씩 피던 담배도 못 피고, 물도 한 모금 못 마시니 다들 입술 허옇게 타서 돌아다니는 거다. 이런 이유로 중동 및 아프리카 지역 기업은 이 기간에는 단축 근무제를 적용한다. 내 회사의 경우 아침 9시-오후4시로 바뀌었다.

라마단이 시작한 날, 거리가 죽은 듯 조용했다. 난 여느 때처럼 8시에 나왔지만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에 차들은 주차된 상태이고, 아파트 1층 구멍가게 문은 굳게 닫혔다. (원래 이 시간이면, 바게뜨빵이랑 우유 사가는 아줌마들로 북적대는 데 말이다.) 회사에 오니 1시간이 지나서야 하나둘 지친 표정으로 출근한다. 내가 점심을 먹고 들어오자, 갑자기 세 명이 내 자리로 달려든다.

“제이미, 점심 뭐 먹었어?”

“김치 먹었지? 뭔가 콤콤한 냄새야”

“아니야, 닭고기 냄새가 나는데..킁킁.”

“넌 왜 금식 안 해?”

내가 대답할 틈도 주지않고 다다다 질문을 던지더니, 마지막 한 마디를 남기며 유유히 사라진다.

“배고파..”

김치에 밥 한 그릇을 먹어치운 내가 괜히 미안해진다. 




모르는 이들에겐 이들의 무조건(?)적인 금식이 단순한 종교적인 의식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들에게 라마단이란 종교를 넘어선 문화이다. 독실치 않은 이슬람교도라도 이 기간에는 의례히 금식을 당연시하며 감내한다. 이 기간은 명절과도 동일하다. 저녁 8시가 넘으면 한 가족이 모여서 한 식탁에서 쇼르바(야채, 고기 등을 넣은 수프), 부렉(고기만두)등을 나눠먹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며칠 전, 친구인 리에스집에 초대를 받아서 라마단 만찬을 참석했다. 의아하게도 식사 시간동안 기도라든지, 알라라든지, 혹은 신의 뜻이라든지 종교적인 소재는 전혀 오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냥 오늘 일은 어땠니. 쇼르바 간은 맞니. 리에스 엄마인 말리카는 나한테 더 먹어만 백 번 하신 듯. 엄마들은 세상 어딜 가나 다 똑같다. 차를 마시며 리에스에게 라마단의 의미를 물어보니, “라마단이 종교 의식만이 아니야. 다들 바쁘게 사니까, 이 한 달만큼 매일 가족이 얼굴보고 밥 먹으면서 안부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없어.” 손톱 같은 초생달을 보며 둘러앉은 가족들은 부른 배를 만지며 행복한 표정이다. 문득 한국에 있었으면 이 시간에 사무실에서 툴툴 거리며 일하고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우리 가족 다섯명이 한 식탁에서 밥 먹은 게 1년이 넘었다는 사실도 말이다. 코란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이들에게 금식 대신에 가족들과의 시간을 보상한 게 아닐까.

남편에게 전화가 온다. 오늘 저녁 메뉴를 궁금해 한다. 무슬림인 남편은 좋아하는 담배도 못 피고(8시 전에는), 한 그릇 꾹꾹 담아먹는 밥도 참아야 한다. 오늘은 일찍 가서 김치볶음밥을 해 줄 참이다. 그의 맞은 편에 앉아서 회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는 오늘 어떤 공부를 했는지 이야기할거다. 밥 먹고 달보고 앉아서 한 번 빌어볼까. 내일은 모두들 배고픔과 목마름을 힘들어 하지 않길. 그리고 가족들과 좀 더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를. 살람 말레이쿰 (당신에게 알라(하느님)의 평화가 있기를)
 
글: 고은영 | 진행: 이경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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