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서 올라온 시골뜨기 소년에게 집 근처, 담쟁이덩굴이 무성한 벽돌 건물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한국 현대건축의 1세대를 대표하는 건축가 고(故) 김수근 선생의 작품이자 직접 설립한 '공간건축'(서울 종로구 원서동)의 사옥이었다. 당대 최고의 건축물로 꼽힌 대가(大家)의 걸작을 보며 자란 소년은 결국 운명처럼 건축가의 길을 걸었고, 그 '공간'에 자신의 평생을 걸었다. 1981년 수습사원으로 출발, 1996년부터 '공간그룹' 대표를 맡고 있는 이상림(55) (사)한국건축가협회 회장이다.

"제가 취임한 이후 외형은 더 성장했지만 건축설계회사로서 '공간'의 위상은 김수근 선생이 이끌었던 당시가 더 높았다고 생각합니다. 당시만 해도 사옥을 갖춘 유일한 건축회사이기도 했죠. 지금 저희가 앉아 있는 바로 이 자리에서 신입사원 면접을 봤던 기억이 생생하네요."

독특한 건물 내외관만큼이나 멋진 은빛 수염이 인상적인 그의 말은 겸손했다. 하지만 '한국 현대건축의 역사' 그 자체에 비견되는 '공간'은 미래 한국 건축문화의 발전을 이끌어갈 기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국내에도 서울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 부산 아시안게임 주경기장 등 대표 작품이 많지만 최근 해외에서 이룬 성과가 특히 돋보이기 때문이다.

"필리핀·리비아·알제리 등 해외 7개국에 지사가 설립돼 있습니다. 해외시장 비중을 현재 35%에서 50%까지 늘릴 계획입니다. 최근 리비아와 외교 마찰이 있지만 잘 풀릴 것으로 기대돼 올해 목표 1천200억원 매출 달성도 무난하리라 봅니다."

이 회사가 해외에서 한국의 기술력을 자랑한 건축물로는 앙골라 탈라토나 컨벤션센터, 리비아 트리폴리 에코트 호텔 등을 들 수 있다. 지난달에는 알제리 모스타가넴 올림픽복합경기시설과 적도기니 대통령궁 복합시설 설계를 따내기도 했다. "앙골라 사업을 둘러본 적도기니 정부 관계자가 함께 일해보자고 제안해 왔습니다. 적도기니 대통령의 이번 방한 때 식사 초대를 받았지만 해외출장 때문에 같이하지 못해 안타까웠죠. 건축설계 수출은 단순한 비즈니스 이상이라 생각합니다. 한국 문화를 수출한다는 의미와 함께 건축물 자체가 한국을 알리는 전령사가 되기 때문이죠."

공간그룹은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는다. 오는 11월에는 그동안 함께해 온 선후배 건축가들과 'SPACE Soul Alliance'라는 주제로 전시회도 계획하고 있다. "지나온 50년의 의미를 되새기고 앞으로의 50년에 대한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고 선언하는 자리가 될 것"이란 설명이다.

공간그룹은 건축회사이기도 하지만 출판사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이 대표가 발행인 겸 편집인으로 있는 월간 'SPACE' 때문이다. 1966년 창간돼 8월호로 지령 513호를 맞은 'SPACE'는 국내 독보적인 건축 전문지로 해외에서도 판매되고 있다. 2008년에는 국내 건축잡지로는 최초로 국제문헌정보색인기구인 '톰슨 로이터'(Thomson Reuters·미국)에 등재됐다. "솔직히 출판사업은 이익이 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기업 이익의 사회 환원을 위해 지속적으로 유지할 생각입니다. 잡지의 자생력을 키우기 위해 E-Book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디지털 콘텐츠 사업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미국건축가협회(AIA)의 명예회원·특별회원 자격을 함께 받을 정도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그이지만 어쩌면 '비트루비우스(고대 로마 건축가)의 후예'가 아니라 '히포크라테스의 후예'가 될 뻔했다. 국립중앙의료원 교수를 지낸 선친 고(故) 이영주 박사의 영향 때문이었다. "대구에서 국민학교를 다닐 때 친구들과 병원놀이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약'을 잘못 만들어 먹이는 바람에 친구가 병원에 실려가는 사고도 있었죠. 하하하. 막연히 의대를 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정작 입시에서 1지망이었던 의대에 낙방하고 2지망인 건축학과에 붙어 인생이 바뀐 셈입니다." 하지만 그의 외동아들이 그의 '허락'도 없이 건축가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을 보면 피는 못 속이는 법이란 생각도 들었다.

이 대표는 다양한 사회활동에도 열심이다. 연세대 유네스코 석좌교수로 있으면서 '역사지역의 사회적 지속가능성'을 연구하는 프로그램을 이끌고 있고, 가난한 이웃들을 위해 집을 무상으로 수리해주는 '희망의 보금자리' 운동도 펴고 있다. "몇년 전 '희망을 짓는 건축가-사무엘 막비와 루럴 스튜디오'라는 책을 번역했습니다. 그런데 막비 교수처럼 저도 직접 나서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책의 인세와 사재를 털어 회사 주변 노후주택 30여 채를 고쳐줬습니다. 회사 신입사원들은 반드시 참여해야 하는데 의외로 반응들이 좋더군요."

경주가 고향으로 대구 중앙초교 4학년 때 상경한 그는 서울중·서울고·한양대 건축학과·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학원을 졸업했다. "스스로 뛰어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열정은 있다고 자부합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뭔가 되지 않을까 스스로 기대도 합니다만 의미 있는 작품을 남겼나 자문도 해봅니다. 머잖은 시기에 회사는 물려줄 생각입니다. '대표 사원'의 부담을 벗어야 '대표 건축가'가 될 것 같거든요. 물론 기회가 닿는다면 소년 시절 추억이 생생한 대구에도 기념비적 상징물을 남기고 싶습니다." 일이 재미있어서 취미도 설계고, 특기도 설계라는 그의 모습에서 장인(匠人)의 아우라가 느껴졌다.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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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08월 1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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